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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섬>의 개봉을 앞두고,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본 작품은 <문라이즈 킹덤>. 2012년 작품. 그의 작품은 그 유명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밖에 보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웨스 앤더슨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입문한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이 그의 작품을 이제야 두 편 보게 된 것인데, 안타깝게도 두 편 만에 든 생각은, 굳이 이 감독의 영화를 머릿속에 컬렉션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였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본다, 는 것은 의미가 있겠으나, 과연 내 뇌에 도움이 될까?라고 생각하니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 독보적 스타일리스트인 웨스 앤더슨. 그 독보적인 스타일이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을까. <문라이즈 킹덤>의 미쟝센은 솔직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미쟝센과 거의 차이가 없다. 극 가운데 정렬, 그리고 트래킹 숏. 물론 그 미쟝센이 몹시 매력적이긴 하다. 두 번 세 번 여러 번 반복해도 용납이 될 만큼. 그렇지만 반드시 언젠간 질릴 것이다. 실제로 오늘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봤을 때 정도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같은 기술로 다른 것을 찍었을 뿐인 것 같다. 그 대신 자꾸 떠오르는 잡생각. “이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동화적인 영화에서 무엇을 더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이 감독이 별로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한 번 더 봤을 때, 느껴지는 게 없을 것 같은 느낌. 아니 두 번쯤은 재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 번 본다면? 네 번 본다면? <개들의 섬>은 대놓고 애니메이션 영화인데, 과연 여기서 무엇을 더 볼 수 있을까? 이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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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문라이즈 킹덤>은 충분히 인상적인 영화였다. 누군가의 인생 영화 리스트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좋은 영화다. 그리고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마음 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포인트를 갖고 있다. 유년 시절 버림받은 아이들의 이야기. 나는 가족과 이별을 하진 않았지만, 심리적으론 어느 정도 버림을 받은 채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과거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문라이즈 킹덤>이 예뻐 보였던 것은 이 소년 소녀가 어리다는 점이었다. 부러웠다. 어렸을 때 서로를 만난 것. 어렸을 때 ‘사랑하는 상대’를 만난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만났다는 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영화 속 이야기를 겪고, 엔딩이 난 뒤의 그들의 사이는 더 단단해진다. 그냥 어른들의 반대를 겪고 서로 ‘내일 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웨스 앤더슨은 여기에 한 가지 사건을 넣는다. 영화가 시작했을 때부터 수지가 들고 다니던 망원경을, 결정적인 순간에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그리고 샘은 당연히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다. 왜 나에겐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왜 내가 좋아하던 여자들은 망원경(비유다.)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부럽다. 나는 이 둘이 손을 잡고 도망쳐 도착한 해변, ‘문라이즈 킹덤’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수지가 망원경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부럽다. 이를 위해서라면 샘처럼 벼락을 맞는다해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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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이 오를 때,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의 오케스트라가 소개된다. 크레딧에 이런 방식으로 OST를 설명해주는 영화는 처음이다.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후보엔 데스플라의 이름이 올라오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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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팬님 누구십니까 정체를 드러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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