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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즈 킹덤>을 보고 웨스 앤더슨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썼었다. 오늘은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날이었다. 처음으로 새로 이사 온 동네인 가산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봤다. <개들의 섬>(Isle of Dogs).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4년 만의 신작. 너무 재밌었고, 너무 좋았다. (세 편 밖에 못 봤지만) 웨스 앤더슨의 최고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웨스 앤더슨의 미쟝센은 결국 동화다. 극단적인 가운데 정렬, (물론 안철수의 극중주의는 아니다.) 그리고 미학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인물, 배경, 사물들의 배치. 다분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 미쟝센은 그 어느 것보다 동화, 즉 애니메이션에 적합하다. 그래서 이 미쟝센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었을 때, 나는 오히려 더 현실감을 느꼈다. 애니메이션에서 현실성이 느껴지는 아이러니. 그러나 이 덕분에 영화에 더 제대로 빠져들어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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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섬>를 보고 개를 너무너무 키우고 싶어졌다. 내 이 감상이 옳은 방향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오히려 개를 키우고 싶지 않아졌을 수도 있다. 아니 키우고 싶지 않다기보단, ‘개의 권리’를 얘기하며, 키워선 안 된다는 얘기를 할 수 있다. 나도 중반부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 그룹 중 ‘치프’라는 개가 주로 이 주장을 한다. 치프는 다른 개들과 달리 떠돌이 출신이다. 한 번도 제대로 ‘주인(master)’을 섬겨본 적이 없다. 반면 치프 외의 다른 개들은 주인을 섬겼던 과거가 있고, 버려진 섬에서 그 삶을 추억한다. 그니까 이 개들이 생각하는 ‘개’의 정체성은, 개는 인간을 섬기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치프는 생각이 다르다. 왜 내가 인간을 섬겨야 하냐는 식의 태도다. 다른 개들은 이런 치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누구를 섬겨 본 적이 없는 나는 치프의 주장이 오히려 정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면서 ‘누가 인간에게 이런 권리를 주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영화가 꼭 ‘개의 해방’까지는 얘기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인간이 개의 주인인양 행세하며 손(발)을 내밀라하고, 공을 물어오게 하고, 이상한 쇼를 하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정도의 메시지는 전달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영화에서 가장 급진적인 메시지를 뱉던 치프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보통 이런 류의 영화는 남들이 다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던 캐릭터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no로 돌리며 끝이 나곤 한다. 하지만 <개들의 섬>은 반대로 혼자 no 하던 캐릭터가 남들처럼 yes 하게 되는 결말이다. ‘개멋대로 하자’던 치프는 결국 주인을 섬기게 된다. 아무리 강압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해도, 개는 인간을 위해 태어난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영화에서는 이를 우려해서인지 ‘개는 인간의 최고의 벗’이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아까 말했듯이 영화를 갑자기 개 버전의 ‘인디펜던스 데이’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정도의 결말이 적당한 것 같다. 벗이니 아껴주자. 그래서 나도 벗을 만들고 싶어졌다. 스파쯔와 아타리처럼. 스파쯔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아타리. <문라이즈 킹덤>의 소년이 겹쳐 보인다. 자신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주로 영화로 만들었던 웨스 앤더슨. 그가 유년 시절에 개를 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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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의 또 하나의 키워드는 ‘일본’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한 영감을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이 감독들에 꽂혔다면, 그 사람은 일본을 다룬 영화를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개들의 섬>은 일단 일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며, 일본의 역사도 인트로에서 조금 믹스하여 다루고 있다. 자연히 일본어가 난무하고, 심지어 자막조차 넣지 않았다. 기존 웨스 앤더슨의 ‘챕터를 소개하는 예쁜 일러스트레이션’도 어디서 많이 본 일본 애니메이션 식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가장 인상적인 일본의 것은 누가 뭐래도 ‘7인의 사무라이’일 것이다. 일단 그 유명한 <7인의 사무라이> OST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버전으로 여러 번 흘러나오고, 주인공 열두 살 소년 아카리는 평소 그 영화에 심취해있던 소년인지 이 노래를 자주 흥얼거린다. 그러나 대놓고 <7인의 사무라이>를 따라하고 있는 건 아니다. 우선 주요 캐릭터들 7명이 한 무리가 아니다. 억지로 짜 맞추면 후반부에 7인이 되긴 하나, 이를 굳이 오마쥬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OST 정도만 따라한 것 같다. 물론 내가 디테일을 놓쳤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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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섬>은 정치적인 영화이다. 정치적 메시지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입하고 싶은 상황과 상징들 투성이다. 내가 <개들의 섬>을 웨스 앤더슨의 베스트라고 느낀 이유도 아마 이런 지점 때문인 것 같다. 어이없는 이유로 섬으로 추방당하는 개들,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고바야시 시장, 섬에 찾아가는 소년 영웅, 섬 밖에서 투쟁하는 집단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도 주인공은 소년과 소녀다. 웨스 앤더슨은 아이들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인 것은 맞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이 중요한 사실을 스스로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나는 웨스 앤더슨은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 애니메이션에 올인하셨으면 좋겠다. 마치 그가 영향을 받은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웨스 앤더슨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 급의 레전드가 되고도 남을 실력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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