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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6월 26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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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시작되면 문이 보인다. 문틈으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그 소리 때문에 문이 들썩들썩일 정도다. 어서 들어가 보고 싶은 이 문. 오늘 본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 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문. 말 그대로 입문(入門). 이 영화는 정말로 감동적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세상 모든 아이들은 나라를 떠나 모두 비슷한 성장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전혀 익숙지 않은 이란 아이들의 이야기를 봤는데 내 어린 시절이 마구 마구 떠오른다. 내 일기장을 들춰본 것처럼 벅차오른다. 이야기는 이렇다. 문을 들어가 보면 한 초등학교 교실이 나온다. 익숙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혼내는 선생. 자기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이렇게 시끄럽냐고 야단을 친다. 어릴 적에 정말 많이 들어본 멘트고, 그 떠드는 소리의 주체가 바로 나였다. 이어서 숙제 검사를 하는 선생님. 선생님은 한 아이가 공책에 숙제를 해오지 않은 것을 두고 몹시 화를 낸다. 그러면서 다음번에도 공책에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퇴학을 시키겠다고 겁을 준다. 그 소리를 듣고 우는 네마자데. 그 옆에 아마드가 앉아 있다. 집에 돌아온 아마드는 깜짝 놀란다. 그의 가방에 네마자데의 공책이 들어 있는 것이다! 걱정이 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마드. 네마자데에게 공책을 주러 가야한다고 엄마한테 말해보지만, 엄마는 아마드가 꾀를 부리는 줄 알고 니 숙제나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꾸 심부름까지 시킨다. 아마드는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큰 결심을 하고, 공책을 챙겨 집을 나선다. 이 때 깔리는 배경 음악. 문득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아마드는 집을 나섰지만, 네마자데의 집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렇게 무작정 집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어른들을 만나고, 그 어른들의 많은 이야기를 듣는 아마드. 하지만 대부분 아마드의 고민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거나, 아예 무시해버린다. 그러다 한 할아버지를 만나는데, 할아버지는 자신이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며, 네마자데의 집에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고, 할아버지는 걸음이 느리다. 또 오랜만에 말동무를 만난건지, 신이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빨리 가고 싶은데 쉬었다 가자고 하고, 괜히 꽃 하나를 꺾어 공책에 껴두라고 권한다. 이윽고 도착한 네마자데의 집. 하지만 그 집은 아마드가 이미 왔다 간, 다른 네마자데의 집이었다. 그러나 착한 아마드는 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공책을 갖다 준 척, 자신의 옷 속에 공책을 숨기고 돌아온다. 그래, 옷 속에 참 많은 것들을 숨기곤 했었다. 이렇게 아마드는 하루 종일 착한 일을 했지만, 결국 네마자데에겐 불행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다음날, 다시 학교. 다가온 공포의 숙제 검사 시간. 네마자데가 떨고 있다. 잠은 제대로 잤을까. 초조해 보인다. 내 공책은 어디에 있을까. 이때 아마드가 나타난다. 아마드가 가져갔으리라곤 예상도 못한 것 같은 네마자데. 아마드는 네마자데에게 다가가 공책을 내민다. 그리고 자기가 네 숙제까지 다 했다고 말한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수법을 다 안다. 특히 숙제에 관해서는 도사다. 숙제를 정말 제대로 한 건지, 대충 아무거나 적은 건지, 다 알아차린다. 특히 다른 사람이 해준 숙제는 귀신 같이 알아낸다. 왜냐면 어린 아이들의 글씨체는 다 티가 나기 때문이다. 이게 마지막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킨다는 걸 안다는 것처럼, 감독은 숙제 검사를 당하고 있는 네마자데의 공책을 보여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필시 어릴 적에 남의 숙제를 대신 해준 적이 있으리라. 긴장되는 순간. 능숙한 손놀림으로 숙제를 훑는 선생님. 그 무서운 손이 마지막 한 페이지를 넘기자, 어제 할아버지가 선물한 예쁜 꽃이 나온다. 여태껏 영화에서 본 꽃 중 가장 예쁜 꽃. “아주 좋아. 잘했구나.” 선생님이 칭찬한다. , 그리고 선생님의 칭찬. 마치 어제 할아버지에게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만 같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방금 본 영화를 다시 글로 쓰는 이 순간에도 소름이 돋고 너무 좋은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제목도 내 스타일이고 사랑스럽다. 이 영화는 내 인생 인생 인생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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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장면에 대해 뭔가 더 쓰고 싶다. 이 영화는 일기장이나 공책에 나도 몰래 껴놓았던 꽃을 발견하는 것 같은 영화다. 꽃 혹은 그냥 심심풀이로 끼적였던 낙서 같은 것. 작은 낙서를 발견했을 뿐인데, 그 순간 과거가 떠오른다. ‘아 그때 이거 누구랑 데이트하다 적은 거였는데.’ ‘아 이거 걔가 몰래 적었던 거구나.’ ‘아 그 때 참 재밌었는데.’ ‘좋았었는데.’ 나는 누군가 나를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자주 다른 사람의 다이어리에 내 흔적을 남기곤 했다. 가장 쉬운 걸로는 캘린더에 내 생일 기록하기. 그냥 생일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김철홍 생일, 선물 사주기.’ 혹은 생일 축하해주기같은 디테일을 써놓기도 했다. 시험 일정이 적혀 있는 곳에 시험 화이팅..’ 같은 것을 적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재밌는 사람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 꽤 많은 낙서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 그 친구들은 다 뭘 하고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 크 진짜 영화 제목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