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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6월 29일. 미스틱 리버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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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 관람. 명작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생각보다 명작은 아니었다. <용서받지 못한자>가 훨씬 좋았고, <그란 토리노>보다도 조금 못 미쳤다. <미스틱 리버><그랜 토리노>처럼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영화는 먼저 세 소년의 과거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것도 정말 무시무시한 과거. 세 소년 중 한 아이 데이브가 유괴되어 성폭행을 당하게 되는 것. 데이브는 가까스로 유괴범들로부터 탈출하게 되고, 그 범인들도 모두 잡는데 성공하지만, 이 세 소년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각자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되는 것. 마치 뱀파이어에게 물린 것처럼. 뱀파이어에게 한 번 물려버리면, 절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각자 떨어져 사는 것으로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던 셋. 그러나 비극적인 사건이 그 셋을 다시 만나게 한다. 이는 미스틱 강의 신의 저주인 것일까. 하수구에 너무 많은 공을 흘려버린 소년들에게 내리는 벌인 것인가. 영화를 통해 트라우마의 잔혹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릴 적 단 한 번의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물론 이 소년들의 경우엔 그들의 선택보다는 성범죄자의 선택이 더 크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서도 선택의 순간은 존재했다. 아무리 숀과 지미에게 네 잘못이 아니었어’, ‘너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해도, 그들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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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하나 있다. 영화 후반, 모든 사건이 벌어진 후, 그러니까 이 세 소년 간의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후, 지친 지미는 집에 돌아온다. 그러자 지금까지 항상 한 발짝 뒤에서 비중 없이 서 있기만 했던 지미의 아내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며 긴 대사를 내뱉는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아니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지미를 위로한다. 분노에 휩싸인 채 어이없는 판단으로 살인을 저지른 지미. 아무리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방금 딸이 살인을 당한 일을 겪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어떤 과거도 살인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아내는 지미를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한 행동들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 당신은 왕이다. 왕은 왕답게 단호하게 행동하는 거다. 힘들더라도 가족을 위해 뭐든 해라. 그리고 퍼레이드에 나가라. 그런 뒤 지미를 침대에 눕혀 키스를 하는 아내. 나는 이 장면에서 뭔가 섬뜩함을 느꼈다. ‘가족을 위해 저지른 살인은 용서할 수 있는가.’ 미드 <워킹 데드>로 대표되는 이 질문은 선뜻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이다. 나는 <워킹 데드>를 보며 그래. 릭이 옳아. 릭이 그럴만 했어. 이건 릭을 뭐라고 할 수 없어.’라고 종종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지만 항상 정말 죽여야 했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미스틱 리버>는 너무나도 단호하게 그럴 수 있다는 답을 한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으며, 이 살인은 옳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또 이렇게도 들렸다. “나는 이 상황이 또 다시 온다고 해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때도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리라.” 나는 이런 류의 영화, 가족을 지키다가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영화의 결말이 자주, 아버지가 살인을 저지른 뒤 수갑을 찬 채 경찰차에 타는 모습, 이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으로 끝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영화들은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미스틱 리버>는 그런 영화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점에서 인정할 만하나, 그 주장이 너무 당당해서 거슬린다. 마치 미국이 벌이는 그 전쟁들을, 그 살인들을 정당화하는 것만 같아 불편하다. 지미의 아내가 계속 뒤에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느끼진 않았을 수도 있다. 일상으로 돌아간 지미가, 가슴 한 켠에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결말이었다면 괜찮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치 나레이션처럼 누군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내의 등장이 영화에 대한 내 감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이 나레이터가 주로 자신의 영화에 직접 출연하지만 이번엔 카메라 뒤에 있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본인일 것이라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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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숀 펜.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기 잘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 취향에선 별로 매력적인 배우는 아니다. 맨날 똑같은 느낌? 그러나 인정할 만한 것은 같은 해 영화 <21그램>으로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 <21그램>은 최근에 본 거 같은데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요즘 너무 영화를 몰아보는 건가.. 복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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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틱 리버>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뭐든 하는 거야, 그게 옳은 거야, 라는 명제의 대표 영화라고 분류할 수 있겠다. <테이큰> 정도가 그 예로 떠오른다. 그 반대 영화로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뭐든 하는 마더를 보여주는 <마더>. <마더>는 그런 사랑이 옳지 않다고 말하며 그 부작용을, 그 추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더>는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 영화 중 나의 베스트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