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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6월 21일. <올리브 나무 사이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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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 사실 시도는 예전부터 했었다. 그가 작고했을 때 정성일 평론가가 씨네21에 기고한 추모사를 봤을 때부터. 이 위대하고 유명한 감독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가 그의 죽음 추모사라니, 참 부끄럽지만 아무튼 그때부터라도 그의 영화 세계를 알고 싶었다. 씨네21아시아 영화 100’ 리스트를 알게 된 것도 그 다음인 것 같다. 그래서 첫 시작을 리스트 공동10위에 올랐던 <클로즈업>으로 시작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겨우 겨우 이 이란 영화의 파일을 구하여 재생을 했는데, 이런, 자막 싱크가 너무 어긋나 있었다. 영어나 중국어라면 어찌 어찌 맞출 수 있었을 텐데, 페르시아어(?)라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자막 파일을 여러 개 시도해봤으나 다 그랬다. 네이버 영화 서비스에도 없는 영화라 결국 포기해버렸다. 이 좋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지, 하며. 그러다 오늘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네이버 영화에 있는 영화부터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선택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부터 보고 싶었는데 네이버에 없었다. 그리고 영화를 본 뒤, 네이버가 싫어졌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3부작 중 3부에 해당되는 영화였던 것이다. 1부가 바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였던 것. 원망스럽다. 나는 무한도전도 시간 순서대로 고집스럽게 챙겨보는 사람인 것을.. 3부작의 3부부터 봐버리다니,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래서 오늘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봤지만,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 대한 감상평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오늘 본 것은 그냥 움직이는 그림이었다. 아무 의미 부여도 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가 이 3부작의 2부인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의 촬영 현장의 다큐멘터리인척 찍은 픽션이라는 것을 잊고 싶고, 지진으로 자신의 친척 25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65명이 죽었다고 과장할 수 있냐는 소년의 말을 잊고 싶다. 내가 원하는 옷을 꼭 입어야겠다는 고집을 가진 소녀를 잊고 싶다. 지주는 지주끼리, 부자는 부자끼리, 무식한 사람은 무식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아무 것도 안 될 거라고 말하던 소년의 말을 잊고 싶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사람끼리 결혼해야 모두 도우며 잘 살 수 있다고 말한 소년의 말을 잊고 싶다. 집 있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집 한 채가 남는 것이 낭비가 아니냐는 소년의 말도 잊고 싶다. 감독의 비현실적인 주문을 어기며 끝까지 (mr)’를 붙이지 않는 소녀를 잊고 싶으며, 그 작은 디테일을 자신에 대한 호감의 표시로 받아들이며 끝까지 소녀를 따라가던 소년의 뒷모습까지 함께 잊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리브 나무를 잊고 싶다. 하지만 아마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