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some point, you gotta decide for yourself who you gon' be.
Can't let nobody make that decision for you."
샤이론에게 후안이 없었다면 샤이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후안이 샤이론에게 수영하는 방법을,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너도 때가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다른 사람이 그 결정을 대신 하게 해서는 안 돼."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샤이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샤이론에게 케빈이 없었다면 샤이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케빈이 없어 아무도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그의 성정체성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그에게 보고싶다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샤이론은 어떻게 되었을까.
샤이론은, 리틀은, 블랙은. 그나마 후안과 케빈이 있었기에 이만큼 올 수 있었던, 버틸 수 있었던 한 남자다. 그러나 현실에서, 평범한 사람 곁에 후안과 케빈과 같은 인물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영화 문라이트는 소수자의 현실을 잘 보여준 영화임에는 분명하나, 그럼에도 아직도 현실이 더 현실이다. ★★★★
You're in the middle of the world, man.
너무나 좋은 장면이 많은 영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뭉클한 장면은 역시 이 장면. 후안은 샤이론에게 물에 뜨는 법을, 수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물은 후안의 가슴을 가릴 정도로 높고 파도 또한 거칠다. 카메라는 마치 물에 떠 있는 양 출렁거린다. 마침내 샤이론은 혼자 물살을 가르는데 성공하고 후안이, 마허샬라 알리가 호탕하게 웃는다. 마치 첫 걸음마를 성공한 아이를 보며 웃는 부모처럼. 영화를 본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웃음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영상>
영화 중 가장 쫄깃하다고 할까, 영화로서 가장 영화답게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샤이론이 케빈의 음식점을 방문했을 때이다. 도어벨이 울리는 소리로 시작해 다시 같은 소리로 끝나는 이 씬은 <건축학개론>의 2부, 즉 어른이 된 남녀가 직간접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언어/비언어적 행동을 했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마음만을 확인하면 됐던 <건축학개론>과 달리 <문라이트>에서는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성정체성까지 확인해야하기 때문에 더 쫄깃했다. 결혼 후 아이까지 났다는 케빈을 보는 샤이론의 표정, 샤이론이 예전과 달리 근육질에 치아에 금색 그릴까지 낀 것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 거 왜 하냐고 묻는 케빈. 안 마신다더니 잘도 마신다. 노래 들려줄게. 등. 흑인 남성 두 명의 대화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 감히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생각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이 영화는 더 높이 평가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문라이트(MOONLIGHT), 2016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색 인종 전용 화장실이 있던 시대 <히든 피겨스> (0) | 2017.03.31 |
---|---|
문라이트가 라라랜드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이유 (0) | 2017.03.23 |
영화 <우리들>이 놓친 너무나 중요한 것 (0) | 2017.03.05 |
<싱글라이더>, 워홀러들에 대한 모욕 (0) | 2017.03.01 |
<라이언> 입양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0) | 2017.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