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있는 배리 젠킨스 감독 (Barry Jenkins)
2017년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 문라이트 (MOONLIGHT)
<문라이트>는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나는 이 영화를 시상식 전에 처음 보고 올 해 작품상은 이 영화가 아닌 <라라랜드>가 받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문라이트>가 받을 거라는 꽤 많은 예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은 상당했는데, 그 이유는 <라라랜드>와 <문라이트> 두 영화를 본 후의 내 기분이 극과 극이었기 때문이다. <라라랜드>는 보는 내내 짜릿했고 마지막에 감독의 이름이 스크린에 떠오르자 나는 데미언 셔젤형에게 나를 바치고 싶은 마음이 생겼었고 이 영화는 틀림없이 내 인생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반면 <문라이트>는 그러지 않았다. 졸음을 깨느라 지쳐 다시 졸렸고, 심지어 영화를 본 뒤의 남은 하루까지 무기력해졌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큰 차이가 나름의 근거였고 이런 나를 놀리듯 아카데미는 <라라랜드>에 상을 줬다가 수상소감마저 끊으며 <문라이트>에 상을 줘버렸다.
시상식이 끝난 후 얼마 뒤, 진행하는 팟캐스트 준비를 위해 두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시상식 전과 정반대가 되었다. <라라랜드>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고 <문라이트>는 인생영화가 돼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나 또한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줬다는 후광 효과’에 눈이 멀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 하는, 나만의 기준도 못 세우는 그런 인간에 불과한 것인가. 슬프지만 달라진 것이 ‘아카데미가 상을 줬다’는 사실밖에 없었기에 그 사실을 인정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다른 사실이 불현 듯 떠올랐다. 달라진 것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는 기쁜 떠오름. 그 떠오름의 정체는 바로 영화를 본 횟수가 바뀌었다는 간단한 사실. ‘두 번’ 봤다는 사실이 달라진 것이다.
<문라이트>는 ‘두 번’ 봤을 때 좋은 영화인 것이었다. 이 영화는 다시 보았을 때, 즉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에 대한 예측을 하느라 뇌의 일부분을 쓰지 않고 온전히 현재 주어지는 장면과 소리를 흡수하며, 미처 발견하지 못 했던 감독이 영화에 심어놓은 장치들을 발견하게 될 때, 무한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영화이다.
‘시’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를 시와 비교하는 분석이 많긴 하다. 그러나 그런 분석들은 주로 영화의 형식과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얘기한다. 그것도 옳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시와 유사성은 ‘알고 보면 더 좋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문학 시간에 시를 배울 때, 시에 쓰인 어떤 단어가 생각보다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시의, 그 시를 쓴 시인의 위대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문라이트>는 이 점에서 시와 같다. <문라이트>는 영화를 다시 본 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장면의 의미를,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작은 대사의 의미를, 중간 중간 이야기와 상관없이 삽입됐던 풍경이나 사물숏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때, 학창시절 위인 리스트에 올렸던 시인들과 영화감독 배리 젠킨스를 나란히 하게 하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가 <라라랜드>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 배리 젠킨스의 영화는 최소 두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처음 봤을 때부터 모든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내공은 없기에. 어떤 감독의 영화를 “두 번 보겠다.”라는 것은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존경의 표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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