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 윤가은
2016. 6월 개봉
영화 <우리들>이 놓친 너무나 중요한 것
“그땐 그랬지”라며, “어렸을 때잖아”,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옛 추억들이 있다. 그 당시엔 너무나 중요하여 내 모든 세계를 흔들 정도의 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사소하고 웃음만 나오는 그런 것들 말이다. 좋아하는 애한테 차인 일, 표현 자체도 웃긴 ‘불량학생’들에게 맞고 손목시계와 작은 물품 등을 뺏긴 일, 자꾸 내 엽사를 찍는 친구와 싸운 일 등이 내게 그러하다.
불량학생 사건은 중2때 일인데, 그 새끼들은 알고 보니 다른 중학교의 같은 학년 아이들이었다. 나의 신고로 경찰에 잡힌 이들은 나의, 정확히는 내 부모님의 용서인 ‘합의’가 없다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졌었다. 엄마는 당연히 그걸 원하지 않았었고 나는 분노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대의, 정확히는 상대 부모님의 사과의 선물인 손목시계를 전달받고 나는 그것을 손으로 짓이겼다. 그 시계는 원래 내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너무나 증정용인 것 같아 보이게, 한 지상파 방송사 로고가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렇게 화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역시 별 느낌이 없다. 라페스타에서 그들을 만나도 못 알아볼 것이 분명하고 그 때 함께 맞은 전우와는 연락도 안 한지 오래다. 이렇게 어떤 옛 일들은 그 때는 나에게 엄청나게 거대하고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나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어 이런 글의 재료가 돼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땐 그랬지”하며 웃어보려 해도 아직도 너무나 아파 도저히 웃어지지 않는, 그런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있다. 그 때 그 놈이 한 말, 눈빛과 표정 등이 포함된 그 때 그 상황, 그리고 그런 수모를 당한 후 나를 보고 있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표정까지, 그 모든 기억은 단지 기억나는 것을 넘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시때때로 떠오른다.
찬 것을 먹을 때마다 시린 이가 고통스러워 머뭇거리는 것처럼, 그 기억은 인간관계 중 어떤 상황이 올 때마다 떠올라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또 그렇게 반복되는 고통 끝에 결국 찬 것을 먹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처럼, 그 기억은 어떤 인간관계를 포기하게 해버리고, 마침내 내 성격, 사람을 대할 때의 모습과 내 첫인상까지도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더 화나는 것은, 이렇게 내 의지와 관계없이 만들어진 나란 사람의 성격은 내 마음에 들지 않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참 불합리하지만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
- <우리들>
윤가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이 영화 속 소녀들의 이야기는 웃어넘길 수 없는 아픈 기억 중 하나인가 보다. 감독은 자꾸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나쁜 기억을 웃어넘기는데 실패하고, 그 아픈 기억을 웃어넘기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영화로까지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영화로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 상처가 치료되었는가에 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치료되지 않았다는 쪽에 확신이 들려고 한다.
어릴 적에 입은 상처의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해 애를 쓰고, 그리고 그렇게 하는데 성공한 이 영화는, 새삼 다시 생각해보자면 오로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의 치유는 너무나 당연히, 피해자 혼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 함께 해야 한다. 가해자의 사과 없이 상처는 절대로 치료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피해자들은 너무 착하다. 너무 착한 나머지 가해자의 입장까지 신경 써주는 게 이 땅의 피해자들이다. 이 영화도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나쁘게 그려지는 게 걱정됐는지, 사과를 해야 할 대상인 가해자까지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극중 아이들을 따돌림 하는 중심 캐릭터인 보라 또한 나름의 아픔이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학원에서 성적 때문에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이나, “넌 항상 그러더라, 왜 맨날 나만 나쁜 사람 만들어?”라는 대사를 통해 이 또래의 보통 아이로, 혹은 전사(前史)가 있어 나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가해자에게 이정도 아량을 베푸는 것이 대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런 가해자일수록 더 냉정하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해자들은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자연스레 사과로 이어질 확률도 낮다. 국내 팟캐스트 포털사이트 팟빵 기준, 꽤 높은 순위에 올라와 있는 한 영화 팟캐스트의 출연자가 자신은 학창시절 때 보라의 입장이었다고 말하며 “나는 보라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그 행동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이 영화의 메시지가 가해자들에게 닿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 영화의 핵심 상징으로 보이는 ‘피구’ 또한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재이다. 피구 씬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있어 꽤 큰 의미를 둔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사실상 ‘우리의 인간관계는 피구와 같다’라고 읽어도 무방한 상징물이다. 영화의 서사로만 보면 이는 적절한 비유이다. 인간관계란 서로를 향해 공을 던지는 것이고, 그 합이 맞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 인간관계의 ‘선’을 넘어가면 죽는다는 것. (영화에서 반 친구들은 주인공인 ‘선’이 선을 넘었다고 고자질한다. 주인공 이름이 ‘선’인 것은 우연일 것이다.) 그리고 죽게 되면 게임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강제로 혹은 자의로 게임과 관계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죽은 사람들이 없더라도 게임은 진행된다는 것 등 하나하나 따져보면 기가 막힌 비유다. 우리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할 소재로 학창시절에 즐겨 하던 피구를 선택한 감독의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구를 좋지 않은 소재라고 말한 것은 피구에 비교된 인간관계가 피구처럼 단지 하나의 게임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위험 때문이다. 이는 인간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게임은 게임이 끝나면 쿨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잠깐 즐기고 금방 잊을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인간관계로 인해 받은 상처는 앞에서 말했듯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과거 따돌림을 당했던 사람들이 ‘그것은 하나의 게임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이 영화를 본다면 일견 머리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가슴으로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미 생긴 상처로 인한 나의 싫은 모습들이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를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위로도 안 될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상처를 우습게 본다며 화를 내더라도 할말이 없는 것이다.
이 영화의 핵심 대사(라고 관람객들이 입 모아 말하는)인 동생 윤의 “그럼 언제 놀아?”도 어떤 의도에서 만든 대사인지 궁금하다. 영화 후반부, 감독의 핵심적인 메시지 한 방이 필요한 타이밍에 아이의 입을 빌려 무심한 듯 던져지는 이 대사는 누가 봐도 감독의 메인 메시지임이 자명하다. 분명 임팩트도 있고 영화를 보는 도중 관객들을 ‘심쿵’하게 만드는 포인트로 영화의 매력도를 올리는 데는 한 몫을 했지만 피구와 마찬가지로 피해자를 위로하려는 영화의 핵심 의도를 흐리게 하는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놀기 바쁜데 왜 싸우느냐고 묻는 대사는 상처 받은 누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대사이다. ‘대충 잊어~’, ‘그런 게 뭐가 중요해? 그냥 놀아~’라 말하는 이 대사는 피구처럼 ‘단지 게임’이라는 접근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피해자들을 진정으로 치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짐까지 덜게 해주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그저 게임을 했을 뿐인데, 피해자들은 그런 게임에 상처를 받는 소심한 사람이 돼버리는 것이다.
- 이 영화를 그들이 본다면
감독이 영화를 통해 상처받은 사람들을(혹은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선의다. 하지만 치유가 어려운 영역, 특히 인간관계에서의 치유를 위해선 가해자의 사과가, 그 사과를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냉정한 시선이 함께 해야 할 것인데, 착한 감독은 냉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좋은 의도에 비해 나쁜 영화가 돼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착한 나머지 그 착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해자까지 배려해버린 것인가, 아니면 고통에 지쳐 그냥 잊으면 된다고 스스로 타협해 버린 것인가. 딱하지만 둘 다 변명이 될 수 없다. 이 영화를 내일부터 모든 초등학교에 틀어준다면 학교 폭력은 감소할까? 오히려 증가하지는 않을까? 이 영화는 가해자들에게, 혹은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읽힐 영화인가. 우리의 이야기를 해준 것에 대해 마냥 박수 쳐주기만 해도 되는 영화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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