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
엄청난 영화를 봤다.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 작. 흑백필름. 아카데미 감독상/작품상 포함 총 7개 부문 수상.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 단연 최고다.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1997),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2002). 이 두 작품, 특히 <인생은 아름다워>는 내 인생 영화이기도 한데, <쉰들러 리스트>는 이 영화들보다 먼저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도 높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인생은 아름다워>보다 더 위대하게 느껴졌다. 1993년 이후의 모든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들은 <쉰들러 리스트>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Inglourious Basterds>, <사울의 아들>. 역시 많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
엄청난 영화의 인상적이었던 것들. 일단 리암 니슨의 젊은 모습. 정말 잘생겼다. 별로인 배우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테이큰> 류의 연기만 할 줄 아는 배우라고 생각했으나, 이 영화를 보고 완전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악역 랄프 파인즈. 리암 니슨에 절대 뒤지지 않는 그의 멋진 젊은 모습. 그의 사이코패스 독일 장교 연기 덕분에 시종일관 섬뜩한 영화가 한층 더 섬뜩해진다.
-
영화가 엄청나다고 했지만 영화의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내 차갑고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전쟁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대인들에게 친한 척을 한다. 그제서야 쉰들러를 영웅시하고, 이 영화를 보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눈물 짓게 만드는, 자긍심이 불타오르게 만드는 장면과 대사들을 선보인다. 아마 이 영화를 처음 본 유대인들은, 마지막 장면 즈음에는 모두 기립하여 노래를 부르며 영화를 관람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카메라는 당시 전쟁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쟁 중에는 유대인들과 거리를 두듯 객관적인 위치를 지키다가, 전쟁이 끝나니 가까이 다가가 친한 척하는. 그런 기법이 그런 의미에서 연출한 것이라면 동의하지만, 그저 ‘국뽕’을 위해 한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
그러나 사실 나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역시 종전 후 장면 중 하나이다. 쉰들러가 유대인들의 환호를 받고 떠난 뒤, 남겨진 유대인들은 갈 곳이 없다. 갈 곳이 없는 그들은 길 한가운데에 널브러져 있다. 그때 한 소련군이 그들에게 다가와 ‘당신들은 자유의 몸이오’라고 말해준다. 한 유대인이 말한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합니까. 소련군이 말한다. 동쪽으로 가지 마시오. 거기 사람들은 당신들을 싫어하오. 그리고 덧붙인다. 저라면 서쪽으로도 가지 않을 겁니다. 동쪽도 서쪽도 가지 못한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한다는 말인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 유대인들은 세상의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한 유대인이 말한다. “We could use some food.” 음식을 조금 가지고 있으니 그걸 이용해보겠다는 유대인들. 약간의 음식을 이용해 자신들을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소련인은 못 말리겠다는 듯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 하나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벌판을 뒤덮으며 걸어오는 유대인 군중들의 모습. 유대인이 아닌 나지만, 이 인종에게 리스펙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세 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영화. 내일은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볼 차례이다.
'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월 30일. 레디 플레이어 원(1) (0) | 2018.03.31 |
---|---|
3월 29일. 약속/쓰리빌보드와 쉰들러리스트/딕슨과 아몬 괴트 (0) | 2018.03.30 |
3월 27일. 샤이닝/잭니콜슨 (0) | 2018.03.28 |
3월 26일. 7년의 밤/장동건 (0) | 2018.03.27 |
3월25일. 인디다큐페스티발/불편한영화제/에이아이 (0) | 2018.03.26 |